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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어머니의 노래>
싫다니깐!
뭔 일있어도 난 다른데로는 안갈것이여!  저승사자가 부르러 올때까진.
도대체  왜 그러냐고?
그건 말이지
여기가 바로 내가 자란[내 고향]이걸랑.
나를 모르는 사람도 없고.
난  혼자살거든......
이날 이때꺼정 학교를 댕겨본 역사가 없어.
몸이 안좋을 땐
옆집사람들이 얼마나 잘해주는지 몰라.
가끔씩은 먹을것도 만들어다 주기도 하구 말이지.
약도 가져다주며
이렇게 넘기면 되요~ 하며 먹여준다니깐.
모두들 날 보살펴 주려고 해.
그래서 혼자라는 생각이 안들어. 쓸쓸하지도 않고.
왜냐고?
난 "우토로의 어머니" 이니까
모두들 날 알고 있으니깐.
다른데선 이렇게 해줄사람이 없잖아.
내가 여길 떠나면
내가 누군지도 잊어버리게 될꺼야.
2002년 2월 24일
<우리들은 여기서 살며 싸워나갈거야   - 우토로 단결집회 -  참가자 일동>

 


  우토로 문제와  약간 차이는 있지만,  거의 같은 역사를 걸어온 지역이 있습니다. 오사카의 위성도시 이타미(伊丹)시  나카무라 지구.
 
 "이타미"(伊丹)시는  지금의  <오사까 국제공항>("이타미공항"으로도 불리움) 에 근접해 있는 지역이며, 그중에도 "나카무라"지구는 쿄또의 "우토로"지역과 동일한 "토지문제"로 수  많은 재일 동포들이 격랑의 세파에 휩싸여 있던 지역입니다.

  다음, 네이버에도 거의 검색되지 않는 "나카무라"지구[ 이타미 공항과 이나가와 <효고현 지류 강>사이의 약 3.4 ha  일본 국유지 편입]의 역사는 오사카공항과의 역사 이기도 합니다.
 
  1938년에  이타미 비행장으로 정비가시작 되었으며, 태평양전쟁 중에는  일본군에  의한
"대규모 항공시설 건설"을 위해 한반도 출신 "한국인"들이 관서 지방을 비롯해, 무작위로 동원되었으며(작업 인부중 70~80%가 한국인) 그들을 위해 공사 숙소가 4,5개  지어 졌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하천 부지에서 하루 종일 궤도차(탄광등에서 사용하는 화물차)에  자갈을 가득채워 나르고 있었다,  그  비참함은  잊을 수 가없다니깐] <나카무라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을 가진  李敬炳 씨(68, 2002년 당시)의  증언>

   전쟁 준비로 본격적인"공항 확장"을 꾀하던 일제는  많은 "한국인 노동자"를 이  지역에이주,동원시켰다고 합니다 .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여기서라도 일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굶어 죽었을 거야] <동  李敬炳씨  증언>
  
 [여긴  내  맘이 머물고 있는 곳이야. 애착도 가고, 이 토지를 싸게 판다면 꼭  사고 싶어.
하지만  국가(일본정부)가 단순히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마지막까지  여기 남을 거야. "우리들의 역사가 여기에 묻어 있으니까"]<동 李敬炳 씨 증언>
 
  일본 패전 후 이번에는"미군"에  의해 비행장이 접수 되어 공항 주위 일변에 철조망이 설치되고, 보안 과 그외의 목적으로 공항으로 부터의 "퇴거 명령"을 주민에게 내렸다고 하며. 미군의 협박에 가까운 명령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행장은 1958년 일본에 반환되어 [오사카공항]이 됐고. 이윽고 "국제선  취항"을  이유로
 2개의 활주로 신설이 결정되었고, 매매된 용지는 "이타미"시에서만, 38 ha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전해  나가는 일본인 지주들에게 "권리 매매"(1평당  얼마라는 구두 계약)을 맺고, 집과 논밭을 샀지.] <나카무라 지구 자치회 위원 "朱宗燮"씨 (64  2002년 당시)>
 
  "권리 매매".  법적으로는 "토지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많은 주민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았던 말이라고 하며.  [실제로,  일본인이 여기서 농사를 지고 있었다. "권리매매"라고 해도  읽고, 쓰기가 안되니, 거의 구두 계약이나 마찬가지지.  밭에  나와있던 일본인 지주 들에게 말을 걸어 "토지 사용권"을  물려 받은 거라 생각해.] <나카무라 지구 자치회 위원 "朱宗燮"씨 (64  2002년 당시)>

 
  공항에 인접해 있는 데도 불구하고, [항공기 소음의 방음공사]는 대상외로 취급 되었고,
"상하수도의 정비"도 없었다.  [불법 점거(일본 국유지라는 논리로)]는 주민들에게 견디기 힘든 매우 열악한 환경을 남겨 주었다.
  
   환경 개선을 위해 분주히 뛰어 다녔던 남편.   꼭 보세요 MORE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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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우여 곡절 끝에 2001년 9월,  출구가 보이지 않던 사태가 움직이기 시작 했다.
일본 정부가 "주민의 집단 이전"을 기본 방침으로 [효고현,이타미시]와 함께 [나카무라지구정비 협의회]를 발족시킨다.  주민들의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이전에 동반되는 "보상"등을
주민 자치회와  교섭하기 시작했다.

  교섭 결과, 이타미시 나카무라지구 근처에 "시영 주택"을 건설하여, 거기에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방향으로 결착 되었다.
 <나카무라 지구는 태평양전쟁 전의 공항 확장 공사를 계기로 인해, 많은 재일 한국,조선인 노동자들이 정착. 국유지의 "점거 상태"를 해소 하기 위해, 2001년 국가와 지방 자치회가 
주민의  집단 이전에 합의하고 보상협의를 계속 해왔다. .....  2002년 코베신문 뉴스 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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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타미시의 주민에 대한 열쇠및서류 증정식
 
 이타미 시에의하면,대상이 되는 208가구 중, 203가구가 "이전 보상"에 합의, 나머지 5가구도 이전에 응할 의사를 표했다고 전했다. <동  기사 발췌>

  현재,  완성된 市営桑津住宅 (시영 상률 주택)에 거의 모든 가구가 이전해  새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우토로와 나카무라 지구 두군데 모두  공항시설,강제이주 노동, 국유지의  불법 거주(일본 정부 입장)등 겹치는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각지의 현  실정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토로"의  경우는  교섭 대상이 국가가 아닌 "철거 소송을 법원에 낸" <민간 기업 西日本殖産 >이라는  약간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즉, <日産車体>(토지의 본 소유회사)로부터 "우토로"지구의 토지를 주민의"동의, 허락"없이 사들인<주민회 회장>(매매거래 후 잠적), 그리고 그 주민회 회장이 세운 <(주)西日本殖産> 으로 다시 불법 매매.  

  이런 불법적이며 불가사의한 거래를 "우토로"주민들은 알 수 도 없었고, 어느날 갑자기 <민간 기업>으로 부터의 <사유지 불법점거 철거 소송>을 당하리라고는 누군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종적인 재판소의 <철거 명령>이 떨어 졌으나,  [유엔]<코피아난 사무총장 때>의 중재가 들어와 <강제 철거의 운명>은 연장 되었다.  

  지켜보고 뒷짐만 지고 있는 일본 정부와  "정치적 이익과 선거에의 영향으로만" 움직이는 한국정부, 철거 소송낸 불법거래기업, 그 사이에서 당장이라도 갈곳을 잃을 수 있는그들은  
 
   
   <수많은  일본 변호사와  이웃 일본 주민들의 응원, 남모르게 지원하는  한국의 자원봉사자들,  품속에 모아둔 비상금을 기부한 한국의 지성들,  평소엔  감정없이 살아가는 "누리꾼" 들의 자발적 성금 참여,  자라나는 어린 새싹들의 푼돈 모금 등의  응원 속에 >

  "비겁하며, 썩어빠진"조국  <대한민국> 의 국적을  부여잡고,
  오늘도 일본인으로의 귀화를 거부한 채 살아가고 있다......  

 
참조 기사
일본 코베 신문 020216 기사
똑 같은 하늘아래<이타미  나카무라 지구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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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raneko